인공지능(AI)과 로봇이 점차 인간 사회에 스며들고 있는 지금, 과거의 SF 영화들이 던졌던 철학적 질문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준다.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 Artificial Intelligence’(2001)와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바이센티니얼맨’(1999)은 인간과 로봇의 경계, 감정의 본질, 존재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두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로봇의 인간화’를 다루고 있지만, 내면에는 매우 깊고 다른 철학이 숨어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두 명작을 로봇 캐릭터의 성격, 감성 표현 방식,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시각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비교 분석해본다.
로봇 캐릭터의 차이점: 프로그래밍된 감정 vs 자율적인 감정
‘A.I.’의 주인공인 데이비드는 인간 여성에게 입양된 소년 로봇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프로그래밍 받은 인공지능이다. 즉, 그는 애초부터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도록 설계되었고, 그것이 존재의 이유이자 목적이다. 데이비드는 엄마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을 충실히 따르지만, 인간 사회는 그를 도구로 인식하며 그 감정을 ‘진짜’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바이센티니얼맨’의 앤드루는 가정용 로봇으로 시작하지만, 감정을 프로그래밍받지 않은 채 스스로 감정과 자아를 발견해간다. 그는 취미로 조각을 시작하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만들어가며 인간성과 맞닿아 있는 창의성과 감정을 깨닫는다. 그의 변화는 주입이 아니라 ‘자율적 진화’라는 점에서 데이비드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이 두 캐릭터의 차이는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라, ‘감정은 학습 가능한가, 아니면 선천적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으로 연결된다. 데이비드는 감정에 복종하는 존재이며, 앤드루는 감정을 선택하고 확장해나가는 존재다. 이 대비는 인공지능의 미래를 바라보는 영화의 입장을 극명하게 나누고 있다.
감성 표현 방식의 차이: 극단적 몰입 vs 점진적 성장
‘A.I.’는 스필버그 감독 특유의 영상미와 음악, 그리고 정서적 연출로 관객의 감정을 한순간에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 데이비드는 인간보다 더 순수한 마음으로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얻기 위해 자기 존재 전체를 던진다. 특히 엄마를 기다리며 2000년 동안 바다 속에 머무는 장면은 비극과 절망의 정점을 찍는다. 관객은 그 순간, 인간이 주지 못하는 사랑을 기다리는 인공지능의 절절함에 가슴이 미어진다.
반면 ‘바이센티니얼맨’은 감정 표현이 훨씬 더 완만하고 일상적인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다. 앤드루는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감정을 익히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 감정의 깊이를 더해간다. 유머와 따뜻함, 그리고 철학적인 대사들이 중심이 되며, 특정 장면에서 눈물을 쥐어짜기보다는 인생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감동을 이끌어낸다. 특히, 마지막에 인간으로 인정받고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인간성과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A.I.’는 단기간의 감정 몰입과 연민을 유도하며 인공지능의 비극적 측면을 강조한다면, ‘바이센티니얼맨’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과정과 감정의 풍부함을 통해 존재의 긍정을 보여준다. 같은 ‘감성’이라는 주제를 다뤘지만, 정반대의 연출 전략을 보여주는 셈이다.
정체성과 인간성에 대한 관점: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은?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바로 정체성과 인간성에 대한 정의다. 데이비드는 인간이 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진정한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인간과 동일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존재론적으로는 끝내 도달할 수 없는 벽 앞에 좌절한다. 영화는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질 수 있더라도, 인간 사회는 그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한편, 앤드루는 자신의 의지로 감정을 표현하고, 인권을 얻기 위해 법적, 기술적 장벽을 하나하나 넘는다. 그는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육체를 바꾸고, 유한성을 받아들이며 결국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이 과정은 단순히 감정의 문제를 넘어서, ‘자아의 권리’와 ‘존재의 주체성’을 획득해가는 서사다.
이러한 차이는 AI를 바라보는 인간 중심주의 시각의 차이를 드러낸다. ‘A.I.’는 인간이 만든 존재가 인간의 경계를 넘을 수 없다는 보수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면, ‘바이센티니얼맨’은 인간성은 육체가 아니라 마음과 정신에 있다는 진보적인 철학을 담고 있다. 그래서 데이비드는 사랑을 원하지만 끝내 거절당하고, 앤드루는 인간이 되길 원하고 결국 받아들여진다.
‘A.I.’와 ‘바이센티니얼맨’은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다. 이 두 작품은 기술이 고도화된 사회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감정이란 어떻게 정의되는가?", "존재의 가치는 누가 판단하는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데이비드는 인간이 될 수 없었기에 더욱 인간적이었고, 앤드루는 인간이 되고자 했기에 진정한 인간이 되었다. 이 두 로봇은 결국 우리가 잊고 있던 진짜 인간성을 거울처럼 비춰준다.